후니볼 VS 병수볼, 숨막히는 수싸움: 35R 강원FC전 리뷰①



10분 이기고 80분 진 경기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도훈 감독은 이번 경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관중석에서 지켜본 이의 입장으로서도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표현이다. 울산은 홈에서 강원을 상대로 2-1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승리했다. 같은 날 전북은 서울과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이제 승점은 3점차로 벌어졌다. 기쁜 결과, 기쁜 소식이지만, 이 날 경기 내용이 강원의 일방적인 공격과 역습을 살리지 못한 울산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온전히 승리를 기뻐할 수 없는 울산이었다.



  울산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김보경의 경고 누적 출전 정지로, 울산은 김보경이 나오던 자리에 주민규를 출전시켰다. 주민규와 주니오가 모두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니 4-4-2 포메이션이 아닐까 예상했었지만, 의외로 울산의 경기중 전술 운용은 4-2-3-1 그대로에 가까웠다.
  강원은 지난 서울전의 선발과 큰 변화가 없었다. 서울전에 센터백으로 출전했던 김오규 대신 신광훈이 출전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팀에 부상 선수가 많아 가용 자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는 한편, 서울전 3-2 승리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도 느껴지는 선발 라인업이었다.

  이야기할 만한 전술적 포인트가 상당히 많은 경기였다. 강원의 2-3-2-3 포메이션과 그걸 막기 위한 주민규 시프트, 그리고 후반전들어 강원이 선보인 3-2-5에 가까운 공격적 전술과 울산의 5-4-1 전환 등, 경기 내용은 강원의 일방적인 공세와 그 공격을 버텨내는 울산이었지만 그 안에 장군멍군하며 주고 받은 수들이 있었다. 사실 그 외에도 할 이야기가 많은 경기였지만, 1부에서는 전술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2-3-2-3 VS 주민규 시프트

  강원의 공격 전술은 '병수볼'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전방으로 갈수록 빨라지는 템포의 짧은 패스, 끊임없는 오프 더 볼 움직임과 스위칭으로 상대 수비를 곤란하게 만든다. 공격 자원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위해, 강원은 2-3-2-3 포메이션의 형태를 이루며 공격 작업을 시도했다.



  위 이미지는 강원이 왼쪽 측면으로 공격을 시도할 때, 왼쪽에 위치한 선수들의 움직임을 도식화해본 것이다. 김현욱과 이영재, 정승용은 서로의 위치를 유동적으로 전환하며 수비 블록의 틈을 노렸다. 상황에 따라 누가 공을 잡았을 때, 누가 수비수를 끌어주고, 누구에게 패스할 지 미리 약속된 패턴이 존재하는 듯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측면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이 있다면, 중앙에서는 한국영이 경기를 조율한다. 한국영은 공격적으로 넓게 움직이는 다른 중앙 미드필더 이영재와 이현식과 달리, 줄곧 후방에 머무르는 모습이었다. 그 위치에서 한국영은 후방 빌드업의 중심 역할을 하며, 중앙에서 빌비야의 움직임에 맞춰 스루 패스를 하거나, 한쪽 측면의 공격 작업이 어려울 때 후방에서 공을 받아 반대편으로 공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한국영은 중원에서의 영향력을 평소만큼 발휘하지는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 울산은 주니오와 주민규를 동시에 기용했지만, 투톱의 형태가 아니었다. 주니오가 평소처럼 최전방에서 움직였다면, 주민규는 평소와 달리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머물렀다. 수비진형도 평소와 같은 4-4-2의 형태가 아닌, 4-4-1-1의 형태였다. 주민규는 수비 블록에 가담하지 않고, 4-4-1-1의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머무르며 한국영의 마크맨 역할을 수행했다. 김도훈 감독이 병수볼의 핵심으로 후방 플레이메이커 한국영을 짚었고, 그 핵심을 막기 위해 주민규 시프트를 가동한 것이다. 그리고 이 '주민규 시프트'는 매우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전반 23분, 한국영의 패스 길목을 막아서고, 전진 패스를 파울로 끊어내는 주민규


  주민규는 강원이 후방 빌드업을 시도할 때마다 한국영을 쫓아다녔다. 한국영이 공을 받으면 전진 패스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서거나, 거친 태클을 해서라도 패스 시도를 끊어냈다. 그 때문에 강원의 선수들은 쉽사리 한국영에게 패스를 시도하지 못했다.


위 이미지에서 5분후, 한국영에게 패스가 오지 못하도록 마크하는 주민규

  중앙의 한국영이 빌드업에 가담을 못하게 되니, 강원에게 남은 선택지는 측면을 활용한 공격 뿐이었다. 센터백과 풀백을 통해 측면으로 공을 전개시키고, 1·2선 자원들이 전방에서 공격을 해결하려했다.
  하지만 울산의 수비 블록은 견고했다. 강원의 공격 방향으로 밀집해 선 울산의 수비 블럭은 공격 자원들의 움직임에도 쉽게 틈을 보이지 않았다. 강원이 울산의 밀집 수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빠른 측면 전환이 필요했지만, 이 또한 한국영이 막혀있어 쉽지 않았다. 반대편으로의 전환도, 중앙으로의 진입도 어려우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크로스 패스 뿐이었다.
  지공으로 틈을 노리다 마지막 선택지로 집어든 '크로스 패스'는 강원에게 가장 불리한 공격 방식이었다. 강원의 공격 자원들은 전방의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전술 특성상 공중볼 다툼에 유리하지 않은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나마 정조국이 186cm로 장신이지만 그조차도 압도적이라고 볼 수 없다. 플레이 스타일도 타깃형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멀다. 강원과 높은 크로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듯 강민수와 불투이스는 강원의 공격 자원들을 상대로 번번이 크로스를 차단해냈다.
  강원의 이영재가 어깨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고, 조지훈이 투입된 이후에도 주민규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병수 감독은 한국영에게 이영재가 수행하던 역할을 맡기고 조지훈을 내려 한국영이 수행하던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로 뛰게 했다. 주민규는 마찬가지로 후방 플레이메이커, 조지훈을 막았다. 그리고 같은 경기 양상이 지속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 김도훈 감독이 선보인 주민규 시프트는, 강원에게 가장 불리한 수를 강요하는 묘수로 작용했다.



3-2-5 VS 5-4-1

  강원은 울산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가패삼기'라는 축구 커뮤니티 유행어가 생각날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 내용이었지만, 스코어는 여전히 2-1에서 변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세에도 결정을 짓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자, 김병수 감독은 타개책을 꺼내들었다. 71분 김현욱을 빼고 서명원을 투입하는 시점이 그 시작이었다. 강원의 포메이션은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3-2-5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후 82분 이현식을 빼고 정조국까지 투입하며 어떻게든 동점골을 밀어넣으려 노력했다.



  김병수 감독은 왼쪽 풀백이었던 정승용을 높은 곳까지 전진시켜 윙어처럼 뛰게 했다. 왼쪽 윙어 김현욱과 교체한 서명원은 중앙 지역으로 옮겨 페널티 에어리어 안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노렸다.
  강원의 변화에 대한 울산의 반응 또한 즉각적이었다. 김도훈 감독은 김인성을 윙백처럼 내려 정승용과 매치업시키고, 오른쪽 풀백이었던 김태환을 센터백 위치로 이동시켜 백쓰리를 구성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울산과 주민규에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는 강원의 포메이션이 3-2-5로 바뀌며 한국영과 조지훈이 더블 볼란치처럼 서게 되었는데, 주민규의 마크맨이 애매해졌다는 것이었다.
  울산은 경기 내내 강원이 공격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수비들을 밀집시키며 전진을 막았다. 수비 블록을 한쪽 측면으로 밀집시키다 보니 반대 쪽에는 넓은 공간이 발생했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주민규가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 전환에 대한 위험도가 낮았다. 하지만 3-2-5 포메이션으로 변경한 뒤에는 상황이 달랐다. 주민규 혼자서는 한국영과 조지훈을 동시에 마킹할 수 없다. 압박이 분산되면 변수가 생긴다.

  두 번째 문제는 한국영의 위치 이동이었다. 강원은 빌드업 상황에서 조지훈을 중앙에 두고 한국영을 왼쪽 풀백 위치로 이동시키며 빌드업을 진행했다. 한국영을 의식한 주민규의 위치도 따라 측면으로 이동되었다. 5-4-1의 측면 미드필더로 몰리게 된 것이었다.
  공수가 전환되었을 때 걷어낸 볼을 받아 연결해줘야 하는 주민규가 오른쪽 측면에 위치하게 되는 것은 역습 상황에 비효율적일 것이었다. 수비수들이 오른쪽으로만 공을 걷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주민규는 이미 80분 이상 맨마킹 임무를 수행하며 체력을 소진했다. 공격/수비 상황의 포지션이 각각 달라지는 역할을 맡기는 것은 무리였다.

  김도훈 감독은 과감하게 전술을 수정했다. 82분, 오늘 경기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해준 주민규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데이비슨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했다. 맨마킹 전략을 버리고, 팀의 진형을 5-4-1 포메이션으로 바꾼 것이다.



  전술 변경 이후, 강원의 공격 전술은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였다. 한국영을 기점으로 왼쪽 측면에서 빌드업을 진행해 울산의 수비 블록을 밀집시킨 다음, 반대편의 넓은 공간에 미리 전진해 있는 강지훈에게로 방향을 전환해 수비 진형을 흔드는 시도였다.



  양 측면을 활용한 강원의 공격에 울산의 대응은 네 명의 2선이었다. 울산의 네 미드필더들은 좌우로 움직이며 측면의 공격 진행을 막았다. 공과 가장 가까운 선수가 전진해 압박하고, 나머지 선수는 수비 라인을 유지하는 식으로 강원의 빌드업을 방해하고, 공을 위험지역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이었다.

  결국 강원의 공격은 울산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울산은 강원의 공세를 끝끝내 막아내며 전북과의 승점차를 3점으로 벌렸다. 공격 전개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수비 전술을 잘 짜오고, 상대의 변화에 잘 대응한 덕분에 지켜낸 1위 자리였다.



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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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그냥 졸전이라 생각했는데 전술적 의견을 담은 글과 보니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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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직관할 당시에는 답답하고 찝찝하고 화나는 경기였는데,
      글을 쓰려고 경기 다시보기를 돌려보다 보니 아주 졸전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어
      울산이 경기를 아예 말아먹었던 건 아니라는 걸 읽는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ㅎㅎ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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